비바 라 비다

Viva La Vida

구세나 개인전 

Sena Gu


2021 / 9 / 9 - 2021 / 11 / 6

생의 찬미

라흰갤러리 큐레이터 조은영





# 만물이 내게 묵시한 것

 

반신반인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거인 안타이오스를 제압한 일화는 그리스 신화가 전하는 희대의 대결로 손꼽히곤 한다. 안타이오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아들로, 그가 어머니인 대지에 발을 딛고 있는 한 지상에서는 그를 당해 낼 자가 없었다. 이 사실을 간파한 헤라클레스는 안타이오스를 공중으로 번쩍 들어 올려 숨통을 끊어 놓았다고 한다. 땅에 몸을 의지하고 흙내음을 맡을 때에야 힘을 얻는 안타이오스, 그는 곧 자연에 의탁함으로써 회복하는 인간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 이 설화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즉 우리의 영육이 자연과 끊임없이 접촉해야만 되살아날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일깨워 준다. 


인간 존재의 원천인 자연은 더욱이 모든 아름다움의 근원이자 예술적 영감의 초대자인 바, 하물며 예술가에게 있어 자연을 연구하는 것은 얼마나 긴요한 과업이랴. 이렇듯 자연이 묵시한 것을 재현하는 일이 예술가의 몫이라면, 구세나 작가의 작업은 작은 것들의 가치를 느릿한 호흡으로, 그러나 노련하게 통찰함으로써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도예를 전공한 그는 그간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지를 활동 기반으로 삼아, 자연물의 형태와 색상, 질감 등을 포착하여 왕성한 자연의 윤곽을 표현해왔다. 구 작가의 대표작인 레몬 형태의 스퀴저, 콜리플라워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단지 (jug), 나무 밑동의 모양을 살린 화병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해부의 정신으로 자연의 세부를 수집하고 분석해낸다. 


이처럼 삼라만상에 대한 관찰을 착실하게 누적해온 작가이기에, 인간의 상상력이 다다를 수 있는 한도는 그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자연 전체가 예술가의 것이라는 열정은, 구 작가로 하여금 도예의 카테고리를 초월하여 하나의 독립체이자 창작자로 서게 하였다. 그가 온기와 생명력을 가진 흙을 주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재료에도 한계는 없다. 국내에서는 상업적인 영역으로 치부되기 마련인 캐스팅 (casting, 주조)을 자주 선택했던 까닭 역시, 경계선이 불분명한 캐스팅 작업의 분야에서 하나의 장르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 그럼에도, Still, Life!

 

구세나 작가는 이렇듯 자연의 품에 영주하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생명의 사소한 요소들을 손으로 더듬거리며 지난 10여 년을 쉴 새 없이 달려왔다. 그러나 올 9월 라흰갤러리에서 개최되는 개인전 《Viva La Vida》에서, 작가는 창작자로서 그가 지닌 내면의 목소리를 경청하여 특별한 공명을 일으키고자 한다. ‘Viva La Vida’는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1907-1954)가 요절하기 직전에 남긴 정물화의 제목으로, ‘인생이여 만세!’ 쯤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세나 작가가 ‘인생 만세’라는 이토록 담대한 기치를 내걸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팬데믹이 초래한 결핍된 상황이 존재에 대한 욕망을 배태했다고도 볼 수 있겠으나, 그보다 작가는 실존적 인간이자 창작자로서 그가 쌓아온 작업의 의미를 냉정하게 찾고자 하였다. 다시 말해 ‘작업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주제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칼로의 <비바 라 비다>로부터 생각의 단초를 찾는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칼로는 소아마비와 대형 교통사고, 남편의 외도가 가져온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예술로 승화해냈다. 특히 그는 정물화를 그림으로써 고독과 절망으로 점철된 삶을 감내하였다. 칼로의 정물은 물론 정물화의 도상학적 기호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서양 언어에서 정물을 ‘nature morte’ (죽은 자연), ‘Stilleben’, ‘still life’ (움직임이 없는 자연)으로 칭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정물의 근저에는 죽음과 바니타스, 인생무상의 정서가 흐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정물은 이따금씩 지나치게 화려하고 감미롭게 묘사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도록 만들었다. 비운의 칼로는 이와 같은 전통을 계승하여 ‘덧없는 삶’과 ‘애도’를 정물을 통해 표현하면서도, 꽃과 과일, 살의 표피 안에 감추어진 감정을 들추어내어 삶에 관한 양가적인 사유를 포착했다. ‘메멘토 모리’의 울림을 남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죽음의 족쇄로부터 잠시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구세나 작가에게 감흥의 원천이 되었던 정물화 <비바 라 비다>는 가장 단적인 예이다. 이 작품에는 숙성 단계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수박이 묘사되어 있는데, ‘인생 만세’라는 제목이나 강렬한 원색의 대비, 단순한 구성으로 인해, 죽음을 목전에 앞둔 자의 두려움 따위는 도통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단단한 껍질을 갈랐을 때 드러나는 달콤한 즙과 과육은, 마음의 굳은살을 박음으로써 강인한 자아를 형성하려 했던 칼로의 열망을 상기시킨다. 칼로가 이처럼 삶을 대하는 아이러니로 역경을 대처했듯이, 구세나 작가 역시 절체절명의 시간을 걸어가는 우리, 그리고 방향성의 기로에 봉착한 스스로에게 삶의 열락을 선사하고자 한다. 자연의 작은 순간들을 움직임이 없는 상태로 재현하지만, 이번 《Viva La Vida》에서 선보이는 그의 작업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을 찬미’하게 하는 긍정적인 에너지, ‘still, life!’의 기운이 생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제 2막으로의 초대 

 

지리멸렬한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세나 작가가 생명력을 전달하는 창작자로서 작업의 새 기틀을 닦고자 결심했다면, 라흰에서 개최되는 《Viva La Vida》 전은 그의 작업 세계에서 주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남미의 축제를 연상시키듯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작업의 이면에는, 시간을 초월하여 기억되고자 하는, ‘불후의 울림’을 향한 욕구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환언하자면 이번 전시를 계기로 그는 단 하나의 작품을 선보일지라도 커다란 공명을 일으키는 작가, 작업과 함께 연륜과 관록을 쌓아가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유머와 위트가 돋보이는 작업들로 인지도를 구축해온 구 작가에게 이것은 ‘제 2막’으로의 도약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이 새 작업을 추진하는 데에 거침없이 뛰어들었던 시기를 지나, 이제 그는 표현에 대한 완성도를 보다 진중하게 고민하고 있다. 형태가 무거워지는 것은 아니다. 단순화된 작업일지라도 곡선 하나하나를 찾는 데에 몰두하고, 비율과 균형의 진수를 파악하며, 그럼으로써 아우라가 빛나는 작품을 지향하는 것이다. 물론 꾸준히 열정을 소진했던 노력에 비해 결과물이 신통치 않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구 작가는 램프워킹, 도자 페인팅, 색의 무한한 영역을 실험하며 스스로를 넘어서기 위해 더디게, 그러나 근면하게 내공을 쌓는 중이다. 이처럼 정체하지 않으며 제 2, 제 3의 막을 올리려는 구세나 작가의 초대 《Viva La Vida》에 기꺼이 응한다면, ‘생의 찬미’로 꿈틀거리는 그의 작업이 얼마나 긴 호흡으로 공명을 일으키는지 여실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