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내가 손을 잡을 때
The Way We Hold Hands
김진희 사진전 Kim Jin Hee
2020 / 7 / 7 - 2020 / 8 / 8
미궁 속 연대, 손에 쥔 붉은 실타래와 바늘
박정원 (라흰갤러리 큐레이터)
김진희 작가의 이번 전시 제목이자 작품 부제, “당신과 내가 손을 잡을 때”라는 문장은 현재 상황과 작업 과정에서 도출된 사유를 반영한다. 이 시리즈의 전신은 ‘핑거 플레이(Finger Play)’이다. ‘핑거 플레이’는 작가가 3년 전 앓기 시작한 손 질환(한포진)에 대한 개인적인 불안감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작가는 자연스럽게 광고와 잡지 등 매체에 등장하는 여성 모델의 다소 과장된 제스처와 매끈한 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작가가 숨기고 싶은 손을 화면 전면에 내세우고 더욱이 불특정 모델의 손과 대조를 이루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만으로, ‘핑거 플레이’가 지닌 개인의 유희적 맥락에서 나아가 ‘관계’에 대한 상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더해지는 ‘바느질’은 ‘연대’에 대한 작가의 주제의식을 명징하게 나타낼 수 있는 도구로 볼 수 있다. 2019년부터 제작된 ‘핑거 플레이’ 시리즈에서 작가의 손이 처음 등장했으며, 실제 사진을 뚫어 손을 넣고 실을 감아 잡는 등 적극적인 연출이 돋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2020년 초 코로나19(COVID-19)가 전 세계에 확산되면서 사람과 사람 간의 ‘접촉’이 제한되어 버린 상황에서 오히려 작가는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연대에 대해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진이라는 매체는 사건과 상황을 포착하고 기록할 수 있는 이점이 있는 반면, 인물과 사물 등 피사체를 통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김진희 작가는 신체의 표정이라고 할 수 있는 ‘손’이라는 소재를 이용하고 사진에 ‘바느질’ 행위를 더하여, 사진을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이미지와 이미지를 잇는 실을 보며 작가의 숨은 의도를 탐색하는 관람자의 태도는 잡지 속 여성의 손과 작가의 손 사이에 놓인 형상을 만들기 위한 무의식/의식 상태와 비슷하다. 김진희 작가는 손과 무의식에 부유하는 정형화되지 않은 형태를 바느질로 매개하면서 의식화되기 이전의 상태를 고스란히 수용한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바느질 행위는 아직 자신 안에서 규정되거나 확정되지 않은 개념 주변을 서성이며 나갈 길을 찾는 동작과도 이어진다.
김진희 작가는 과거 작업을 통해서 역시, 작가 개인이 가지는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예술가/사진가’라는 정체성이 현대 사회 구조 안에서 겪게 되는 괴리감과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해의 접점에 대해 꾸준히 표현해왔다고 생각한다. 단, 이전 작은 작가가 질문하는 대상이 정해져 있으며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오히려 이미지와 바느질 디자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희석하려는 점이 보인다. 예를 들어, ‘She’ 시리즈는 작가와 인터뷰한 여성이 직접 등장하지만 그 내밀한 내용은 서로만이 알 수 있게끔 해독 불가능한 텍스트 디자인으로 대체한다. ‘April’ 시리즈는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던 진도 팽목항 바다를 색 고운 실로 덮는 작업인데, 특정 사건과 장소를 떠올리기는 어렵다. 두 작업 모두 ‘치유’라는 정서가 들어있다. ‘핑거 플레이’ 이전 사진 작업들은 관찰자로서 어떤 사건이 벌어진 이후 대상에 대한 애도와 위로 등 이타적인 감정을 가지는 동시에 내향적인 메시지를 가늠하게 한다.
김진희 작가의 자전적인 서사에서 출발한 ‘핑거 플레이’ 시리즈는 코로나19 팬더믹 사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매체 속 모델의 손이 관습에 의해 학습된 여성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반면, 작가의 손은 사회화되지 않은 현대 사회의 온상을 대변한다. 이 과정은 주로 두 손의 비교와 대조가 주를 이룬다. 이후 코로나19라는 외부요인이 개인과 사회에 등장하면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인은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동시에 개인과 단절되고 마는 강력한 인자가 되고 만다. 이것은 개개인이 역사와 문화를 거치며 형성되는 사회화를 생략하며 개인을 하나의 현상으로 전락시킨다. 오늘날 개인과 사회는 코로나19 종식을 목표로 자연스럽게 비접촉과 격리라는 상황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연대’를 맺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도출된 ‘핑거 플레이’ 연작, ‘당신과 내가 손을 잡을 때’ 시리즈는 ‘지금’이라는 시점이 지배하며 작가의 사회적 참여에 대한 무의식이 직접적으로 발현되며 이전과는 다른 속도감을 갖게 되었다. 특히 ‘당신과 내가 손을 잡을 때’는 여러 사진작품이 그래프를 연상시키는 붉은 바느실 선 하나로 이어지는데 상승과 하강을 그리는 선들이 실시간 바이러스 확산 현황을 떠올리게 한다.
김진희 작가의 작품은 예술이 코로나19 시대에 필요한 정서적 백신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심어준다. 현재 상황에서 손을 잡는다는 의미는 접촉을 통한 인연(因緣)이 아닌 동일한 지향점을 가진 ‘연대’를 촉구한다. 그런 점에서 작가가 손에 쥔 붉은 실타래와 바늘은 가장 단순하고 중요한 시각적인 감각으로 행할 수 있는 돌파구로서 역할 한다. 마치 미노타우르스를 없애기 위해 크레테 궁전의 미로를 거쳐야만 했던 테세우스가 거대한 미로의 시작과 끝을 붉은 실이 이끄는 점과 선 덕분에 생명을 잃지 않은 것처럼. 김진희 작가의 작은 손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실제 자신이 시작점에 꽂은 바늘 구멍을 지나는 붉은 실을 타고 이어진다. 손과 붉은 실 그리고 바늘이 이끄는 이 이야기는 거대 공포를 지닌 사회를 사소한 연대를 통해 무색하게 만드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