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RENT EXHIBITION
실제, 실체의 실재 Actually, Actualness of Actuality
김선희
Sunny Kim
2024 / 04 / 11 ~ 2024 / 05 / 18
실제, 실체의 실재
조은영 (라흰갤러리 큐레이터)
태양에서 방출된 빛은 차갑고 광활한 우주의 암흑을 통과한 지 약 8분의 시간이 흘렀을 때 비로소 우리 눈에 도달한다. 관객인 당신이 지금 이 글귀를 보고 있는 것은 대기 중에서 산란된 빛알 하나가 망막에 닿음으로써 가능한 일로, 이는 막대한 규모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우주적 사건인 셈이다.1) 시간을 제어하고 공간을 해체하는 빛은 이처럼 삶을 지배하는 모든 현상과 개념의 모태라고 하여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빛은 실제로 실재하면서도 본연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 탓에, 우리는 일상을 빛으로 시작해 빛으로 마감하면서도 빛의 존재를 그러한 시각적인 인지 작용 중에 무심코 망각해 버리곤 한다. 그런데 설치미술가 김선희는 이렇듯 사물을 비추는 매개물로서의 빛, 혹은 ‘본다는 행위’의 수단에 머물던 빛이 감각과 인지가 성취되기 위한 선행 과정에 늘 실재하고 있음을 드러내 보인다. 본 전시 《실제, 실체의 실재》는 빛의 현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관찰하여 이를 공감각적으로 구현하는 장으로, 여기서 작가는 빛의 실체와 행동을 고찰한 결과물을 통해 삶을 둘러싼 새로운 관점을 환기하고자 한다.
# 표면 : 현상의 전모
《실제, 실체의 실재》에서 김선희는 빛의 모습을 관찰하고 채집하여 이를 입체 조형의 형식으로 표본화한 결과물을 선보인다. 그러나 그의 예술 행위는 망막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나 빛의 정체를 광학의 맥락에서 설명하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작업은 오히려 빛의 씨앗이 떨어지는 일차적이고 우선적인 거류지, 말하자면 모든 것이 걸러지지 않고 속한 ‘표면’을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현상의 전모가 속속들이 드러나는 이 표면에서 복잡한 비유나 의미를 배제한 채 벌어지는 감각과 감각의 마주침을 목격하였고, 그러한 표면에 가장 먼저 도달하여 현상학적인 모든 가능성의 ‘동인’이 되는 빛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로서 김선희의 활동은 창작자라기보다는 관찰자나 전달자의 그것에 가깝고, 그러한 결과물은 상술한 바와 같이 표면에 실재하는 빛의 실체를 모아 조립한 인상을 주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작업에서 그는 간헐적인 섬광은 물론 눈꺼풀 밑으로 희미하게 스치는 광선까지 하나하나 포착하기 위해, 표면에서 목격한 현상들을 이미지나 영상물로 세밀하게 기록하는 것을 작업의 관건으로 삼는다. 이는 현상이 어떠한 가림판도 없이 노정된 표면으로부터 빛의 실체가 실제로 실재하는 순간을 직관으로 파악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작가는 규정하기 어려운 빛을 이토록 끈질기게 탐구하게 했던 원동력를 자각하는데, 특히 목적과 성취에 집중된 관점을 다양한 ‘순간’의 지점들로 옮겨 ‘감각의 부피와 근력’을 확장하려는 것은 본 전시를 뒷받침하는 주요한 맥락 중 하나다.
# 순간 : 현상의 실재
우리가 삶에 초점을 두는 대상과 방식은 빛을 감각하는 습관과 무척 닮았다. 양자 모두가 대개는 ‘목적’의 성취를 겨냥하는 까닭이다. 예컨대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의 갈래들은 목표와 이상을 좇는 삶의 태도로 인해 그것을 미처 담을 새도 없이 유실되곤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빛이 눈과 물질 사이의 상호관계를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명목 아래) 빛을 감각하는 순간의 과정들보다는 ‘본다’는 목적에 언제나 먼저 도달하지 않던가. 그러나 삶이 명사로 규정되는 것이 아닌 동사로 형성되는 지난한 경로이듯, 현상의 세계 또한 순간이 발생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순간의 틈새’를 직시할 때에야 비로소 본질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법이다. 김선희의 작업 또한 빛이 매개물이면서도 때로는 주체로서 현상의 다채로운 인상을 표현하게 되는 순간을 포착하여, 바로 이처럼 순간에나 발견할 수 있는 진실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본다’는 행위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밀한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진다. 외부에서 반사된 빛이 눈에 도달해 망막에 닿기까지의 과정이 물리적 현상이라면, 시신경에서 전달받은 신호를 뇌가 해석하는 데에는 인지적이고 심리적 반응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기의 모든 과정에서 빛은 실체가 보이지 않음에도 분명히 실재하는데, 김선희는 이러한 원리를 설득하기 위해 다양한 상황으로 끌어들인 빛을 여러 감각으로 번역하기를 시도한다.
# 감각을 넘어선 감각
이를테면 그는 빛이 시각적인 인지 수단에 머문다는 통념에 대응하여, 그것을 시각 외의 다른 감각의 형태로 전이시킨다. 오감을 건드리도록 번역된 빛을 통해 관객이 이를 공감각적인 실체로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감각을 넘어선 감각, 경험을 넘어선 경험을 수용하게끔 이끄는 것이다. 김선희가 이번 전시에서 주요 재료로 사용하는 한지는 이렇듯 감각을 굴절시키고 경신하는 대표적인 매체이다. 그간 작가는 종이와 빛을 조합하는 작품을 자주 다루어왔으나, 물질을 드러내기보다는 수식되지 않은 현상을 바라보는 그의 작업에서 한지의 존재감 강한 물성은 이 재료를 수용하기 어려운 큰 장벽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작가는 근래의 작업에서 한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이는 서사 재료인 한지에 응축된 기나긴 보존의 역사가 그에게 기록의 ‘온기’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지에는 닥나무를 베고 말리며 섞기를 수십 번 반복하는 손길이 표면에 고스란히 담겨 있고, 김선희는 빛의 시각적 감각이 그러한 한지의 표면을 거쳐 촉감과 소리 등으로 전이되게 만듦으로써 감각의 확장을 꾀하는 것이다. (더불어 《실제, 실체의 실재》에서 한지가 갖는 맥락은 본 전시가 현대미술에서의 한국성을 탐색하려는 라흰갤러리의 연간 기획인 ‘숨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물론 작가가 감각의 다채로운 가능성을 도모하고자 실험했던 재료는 비단 한지에 그치지 않는다. 가령 본 전시에서 그가 선보이는 스트레치 패브릭 작업은 표면에서 확장되는 빛과 (프리즘으로 굴절된) 표면 너머의 빛을 동시에 마주하게 함으로써 빛의 실체가 머무르는 각양의 방식을 보여준다. 빛의 실체를 표현하기 위해 그간 물성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매질을 고집했던 김선희가 재료를 이렇게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빛의 실체가 지닌 실재감이 특정한 물성과 질감 때문에 퇴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실제로 받아들여지는 실체의 실재’가 언제나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는데, 그럼으로써 그는 이와 같은 가변성이야말로 현상을 둘러싼 우리의 아집을 유연하게 만든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또한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작가는 본 전시를 계기로 관객이 빛의 실체를 접하고 매 순간 현상의 실재와 비실재를 감각하며, 궁극적으로는 순간을 생생하게 인지하는 ‘감정의 수축과 이완’의 과정에 주체적으로 놓이기를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 끝에 그는 작업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유하기보다, 관객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전시 방식으로 감각의 가능성을 개척하는, 관객 참여형 혹은 관객 일체형 전시를 모색하기에 이른다.
# 비결정적 관계 맺기
《실제, 실체의 실재》에서 관객의 참여와 그로 인한 공감각의 발현은 공간의 특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이루어진다. 작가는 라흰갤러리의 복합적인 공간 요소들이 (작품에 포섭된) 관객의 행위와 비결정적인 관계를 맺도록 유도하여, 감각의 다채로운 잠재성을 극대화하고 관객과의 새로운 관계를 탐색하는 것이다. 예컨대 1층의 공간은 보이드 (void)를 통해 지하층과 시선이 오가는 시점의 다양성, 채광창으로 유입되는 자연광, 좌식과 입식이 가능한 동선이 확보된다. 여기에 김선희는 시점에 따라 물질이 보이거나 가려지는 종이 발 형태의 작업을 설치하고 가장 뒷면에 광원을 배치하여, 관객이 빛의 레이어링에 의한 현상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한 2층 전시장은 화이트큐브의 구조를 통해 보는 이의 이목을 작업에 집중시킬 수 있는데, 작가는 관객의 참여라는 변수로 결과가 변할 수 있는 프리즘 작업을 이곳에 마련했다. 이 작업은 프리즘이 모인 큐브를 반복적으로 병렬 배치하여 빛의 편광을 증폭시키고, 이렇게 번역된 빛의 파장을 공간에 머무르게 한다. 그리고 작가는 빛이 분광되는 이 과정에 관객의 행위를 개입시켜, 빛의 방향과 속도, 색감이 관객으로 인해 다양하게 번역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공간의 인상을 뒤바꾸며 실재하는 빛의 실체를 마주하면서, 실재하는 현상이 이렇게나 가변적임에도 이 변화가 실체의 본질을 바꾸는 것은 아니며, 지금의 ‘순간’들이야말로 실제로 실재하는 실체임을 경험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좌식 공간으로 마련된 3층에는 앞서 언급했던 한지를 이용한 작업이 놓여 있다. 감상자와의 심리적, 물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는 이 공간에서, 빛의 형상은 관객이 한지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한지의 질감과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통해 유기적인 감각으로 번역된다. 말인즉 김선희의 한지에 쓰인 것은 텍스트가 아닌, 드러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빛의 형상인 셈이다.
한편 관객의 행위와 관점이 개입될 때에 작품이 비로소 완성에 이른다는 이상의 맥락에서, 혹자는 빛이 관찰자의 유무에 따라 때로는 입자처럼 때로는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양자역학의 ‘관찰자 효과’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2) 절대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빛의 본질 앞에서 기실 우리는 현상을 오롯이 이해한다는 것이 당최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 다시금 근원적인 물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김선희가 이다지 집요하게 빛을 좇는 이유 또한 실제로 실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실체의 대표적인 예가 다름 아닌 빛이고, 빛의 양가적인 현상을 살필수록 이처럼 삶과 존재를 새로운 경이로움으로 다가가게 된다는 데에 있을 터이다. 지식을 정교화해도 실체의 실재는 정말이지 늘 우리의 계산 너머에 있지만, 그럼에도 김선희는 빛에서 발원하여 삶의 심연에서 완성되는 감각의 과정으로부터 순간들의 찰나적 운집을 낱낱이 채록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자의식을 투사하기보다는 감각의 선을 따라 현상을 옮기는 작가의 작업을 찬찬히 더듬어 볼 때, 과연 우리는 수용자가 아닌 주체자로서 현상의 순간에 참여하고, 순간을 실제로 응시하며, 순간을 살아가는 삶의 실체가 여기에 실재하고 있음을 감각하게 될 것이다.
- 고재현, 『빛의 핵심』 (사이언스북스, 2020), 15.
- 서민아, 『빛이 매혹이 될 때』 (인플루엔셜, 2022), 22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