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셀 메모리
김정인
Kim Jungin
2023 / 11 / 09 ~ 2023 / 12 / 09
픽셀 메모리(Pixel Memory)
문현정 (독립 큐레이터)
1. 회화의 시간
데이비드 조슬릿은 ‘모든 회화는 시간 배터리이며, 회화는 시간을 채우는 사건에 개입하기보다는 시간을 표지한다’고 서술한다. 이는 곧 회화가 가진 시간성이 다른 매체, 이를테면 영상이나 사진과 같이 과거의 시간을 감각해야 하는 매체가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서의 매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회화는 특정한 경험을 작가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끊임없이 표지(marking)함으로써 고정된 것이 아닌 유동하는 시간성을 가진다. 회화가 포착하는 장면은 특정한 시간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며, 관객은 그려진 회화를 통해 외형적 재현의 결과를 마주할 뿐 그 내부에 숨겨진 복합적 시간의 층위를 읽어나가는 과정을 수행하게 된다.[1]
김정인은 급변하는 시대적 현상에 대한 성찰을 토대로 이를 저항하기 위한 기억의 혼합으로서의 이미지를 회화로 구축해왔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작가의 기억 일부를 조각으로 꺼내어 보이며 잉여 기물과 나무 등의 이미지를 활용해 내외부를 엮어내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지에 대한 기존의 탐구에서 이어지는 작품은 반복적인 사물, 이를테면 나무나 사진 조각과 같은 도상을 활용해 회화적 시간의 관계망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전시 «픽셀 메모리(Pixel Memory)»는 기억으로서의 이미지가 분절된 이후 다시 재조합되는 일련의 과정을 회화 속에 나열해 내고 있다. 여기서 ‘픽셀’은 화면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최소의 단위이자 작은 사각형이 무수히 나열되는 행과 열의 조합을 은유한다. 기존의 작업이 드러내던 납작한 이미지 - 축적과 이미지 – 조합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이를 탈피하며 입체적 층위에서의 다중적 경험을 축적해 내며 시간성을 해체한 이미지를 직조한다.
2. 이미지 - 기억
김정인은 이번 전시를 통해 회화로 ‘누실된 시각적 기억’을 조합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이는 곧 기억이라는 주관적 관념이 우리의 머릿속에 어떻게 시각적 정보로 잔재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며, 그것을 회화로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 유실되거나 사라지는 기억의 편린을 조합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기억 속 이미지를 소환해 내는 이번 작품에서, 전반적 구상은 특정 대상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라기보다는 누실된 시각적 환영에서 기인한 ‘조각난 기억의 집합'이 될 것이다.
작가는 기억체계를 유도하는 신경의 구조 중에서도 시각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의 경험에서 기인한 사건은 인상으로 잔재하며, 이는 구체적인 형상이 아닌 심상과 사고에 의해 변형될 가능성을 내재한 이미지로 각인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각적 형상을 획득한 이미지는 과거 시점을 표상하는 잔재로서의 단편을 추적하는 상태로 남게 된다. 그렇기에 인간은 자신의 기억을 명확히 보존하기 위한 장치로 사진과 같은 디지털 저장 매체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끊임없는 ‘망각',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내재기억(anamnesis)’을 몸 밖의 다른 사물로 외재화하고자 했던 여러 시도는 다양한 ‘기억기술(hypomnemata)’을 토대로 구체적 이미지를 확보하도록 만들었다.[2]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인간의 ‘망각'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시화하며 그 속도에 저항하기 위한 회화적 시도를 행하고 있다. 데이터로 저장되는 사진과 같은 명확하고 단편적인 기록을 거부하는 것은 곧 손쉽게 수집되는 정보로서의 이미지를 배제하는 것이며, 막을 수 없는 ‘손실‘을 마주하고 소화하며 다시 뱉어내는 이미지의 방법론을 탐구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전시의 중심적인 소재로 등장하는 ‘나무’는 작가의 망각과 소실된 기억을 은유하는 사물이자 자신의 자화상을 대변하는 대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전의 작업에서도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나무의 이미지는 작가의 삶의 일부로서 지속적으로 주변에 머무는 개체이자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존재할 수 있는 대상을 서술한다. 이는 그가 과거 마주했던, 철근을 둘러싸고 자라나면서도 그를 우회하지 않고 자생력을 드러내는 나무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경 대상으로서의 나무는 어느 순간 철거되기도 하며 과거의 장면을 상상하도록 하는 매개체가 되는 동시에, 변화하는 세상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상태로 존재하고자 노력하는 작가 스스로의 저항술을 의미하기도 한다.
3. 이미지 - 시간
우리의 기억이 저장하는 모든 이미지는 ‘시간성’을 가진다. 이미지는 움직이는 시간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예술은 그 선형성 속에서 일부를 잘라내거나 편집한 순간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3] 작가는 회화 속에서 이 시간성을 편집하는 방법으로 이미지를 조각내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이는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존재할 수 있는 이미지의 정적 양태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이자, 급변하는 시간에 저항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이미지 방법론을 제안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회화는 정방형의 입방체가 반복되는 형태를 통해 하나의 입체적 이미지로 구체화되고 있다. ‘프랙탈(fractal)’의 형상을 한 전반의 구조는 유사성을 가진 작은 조각을 반복하며 기하학적 형태로 전체를 완성한다. 그러나 전체는 하나의 완벽한 이미지로 수렴하는 것이 아닌, 느슨하고 기이하게 연결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완성된 이미지를 연상하는 것을 와해하는 역할을 하며, 작가의 유실된 기억에 의존하여 그 속에 존재하는 풍경을 다시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구현해낼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구상 - 해체적 시도는 시간의 선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자, 완벽히 보존된 것처럼 보이는 지금 이 시대의 이미지가 가진 환상에 대응하기 위한 시도로 드러난다. 기억의 외재화를 위한 장치, 완벽한 데이터로 작동하는 사진은 시간의 일부분을 반추할 뿐, 본래적 시간에 대한 감각을 유실하게 만드는 식으로 시각 이미지를 체화하는 다양한 감각을 저해한다. 작가가 드러내는 와해된 이미지의 구조는 정지된 사건의 단면 혹은 작가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이미지를 시간의 파편처럼 발견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가 화면에서 마주하는 이미지는 순간의 유동하는 감각을 담아내는 것이며, 회화가 담을 수 있는 시간의 현재적 실재(real)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4. 작품으로 돌아와서
전시에 등장하는 작품 속의 여러 도상은 작품 전반과 공명하며, 모든 이미지를 하나의 선상 위에 위치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를 내포하고 있다. ‹기억을 모으는 일›(2023), ‹다시 세워지는 기억›(2023)과 같은 작품은 작가 개인이 자신의 주변에서 경험한 ‘나무', 그 시간 속에서 남게 된 이미지로서의 잔상을 표상한다. 기억 속 단편적인 나무의 조각, 인물의 모습, 갈라진 틈, 흘러내리는 천, 작업을 위한 스케치 등은 반복되는 정방의 패턴 안에서 기하학적으로 엮어 내어지고 있다. 여러 시각 정보는 하나의 평면 위에서 이차원과 삼차원을 오고가며 그 복합적인 시간성을 하나의 축 위에 올려놓고 있다.
‹시간을 품은 잔해›(2023)는 부식된 천장의 잔해와 틈이 중심을 이룬다. 주차장의 천장은 시간에 따라 풍화되기도 또 여러 잔해를 쌓아나가기도 하며 나름의 리듬을 형성하는데, 이는 그에게 나무와 유사한 시간성을 드러내는 매질로 기능한다. 와해되고 사라지는 자연의 섭리와도 닿아있는 기물에 대한 기억은 전시장 내부의 여러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있다. ‹썰린 기억의 합›(2023), 그리고 ‹선명해지는 기억›(2023) 시리즈는 프랙탈 구조를 통해 느른 시간의 총체를 엮어낸다. 시각적 환영을 유도하며 다시금 이미지를 반추하는 회화 속 유리는 기억의 편린을 쪼개어내며 완전하지 않은 시각적 인상을 기록함으로써 시간에 저항하고 있다. 전시의 제목과도 동일한 ‹픽셀 메모리›(2023)는 작품 전반에 연대하는 총체적인 상을 천으로 가려내며 기호적 틈 사이로 그 일부를 보여냄으로써 단편적 이미지의 인상을 가시화하고 있다.
김정인의 회화가 이야기하는 기억과 시간, 그리고 이미지에 대한 사유는 곧 그가 회화라는 매체를 대하는 태도와도 공명한다. 현재 진행형의 시간성을 가진 회화가 직조되는 방식, 그 과정에서 물리적 시간을 따르며 발생하는 변화나 유실의 과정은 곧 이번 전시가 발화하는 일련의 이야기와 축을 함께한다. 그가 보여주는 나름의 저항술로서의 회화는 조각나고 - 재조립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하나의 이미지를 조합해나간다. 그의 회화 속 어긋난 이미지는 관객으로 하여금 ‘기억 - 이미지’의 불완전성과 ‘시간 - 기억’의 관념적 이해를 유도하며 그가 저항하고자 했던 급변하는 시간성을 다시금 회화를 통해 체화하도록 만들어내고 있다.
- 데이비드 조슬릿, 「(시간에 대해) 표지하기, 스코어링 하기, 저장하기, 추측하기」, 김남시 외, 『평행한 세계들을 껴안기』, 현실문화A, 2018, p.110-111
- 이재현, 「시간, 기억, 기술: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의 기술철학」, 이광석 외, 『현대 기술 미디어 철학의 갈래들』, 그린비, 2016, p.157
- Hoelzl, I & Marie, R, Softimage Towards a New Theory of the Digital Image,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5, p.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