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Lamp,
New Typologies
양정모 개인전
Jungmo Yang
2022 / 07 / 12 - 2022 / 08 / 13
생동하는 빛의 푸가
라흰갤러리 큐레이터 조은영
# 시금석처럼 주어진 빛줄기로부터
‘규칙을 내면화해야만 비로소 자유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이 역설적인 명제는 특별히 예술가에게 회피하기 어려운 당위의 문제다. 잠시 여담을 하자면 스스로에게 부과한 법칙에 의거하여 최대한의 확장을 끌어낸 예술가로는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바흐 (J. S. Bach)에 필적할 자가 없는데, 특히 그의 푸가 (Fuga)는 통일성과 무한한 가능성이 극치의 조화를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푸가는 단일 주제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각 성부에서 변형되고 되풀이하며 전개되는 형식으로서, 선율들이 서로 쫓고 모방하며 어우러지는 건축적인 구조이기 때문이다.1) 공예가 양정모의 작업을 논하기에 앞서 이처럼 서두에서 푸가를 언급한 것은, (마치 조형 예술의 내면에도 음악이 흐른다고 했던 독일의 시인 노발리스 (Novalis)의 표현을 상기시키듯)2) 작가 또한 긴장과 이완에 시선을 두고 ‘원형’의 변형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까닭이다.
본 전시 《Paper Lamp, New Typologies》에서 양정모는 표면에 종이를 발라 만든 지등 (紙燈)의 새로운 유형을 실험한다. 여기서 작가가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주어진 공간에 따라 지등이 어떻게 확장되고 유연하게 변모할 수 있는지에 관한 가능성이다. 그런데 앞서 상기한 바와 같이 그는 지등의 디자인과 성능 측면에서 작업을 좌우할 수 있는 특정한 원형을 시금석으로 두고, 이로부터 새로운 창조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지식과 상상력의 다리를 놓는다. 가령 조각가 노구치 (Isamu Noguchi)의 형태와 빛에 관한 예술적 모색이나, 편하게 접을 수 있는 접등 (摺燈)의 기능 등이 바로 양정모가 본보기로 삼는 원형이다. 그리고 작가는 원형의 요소들을 탐구하여 독창적인 지등의 가능성을 진전시켜 나간다. 양정모의 작업은 이렇듯 원형으로부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도안을 완성하면서도 그것과 일정한 결속력을 지닌 상태로 변주한다는 점에서, 빛으로 싹을 틔운 푸가를 눈으로 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하나의 지등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빛줄기를 단정한 얼굴로 노래할 때, 이 선율 곁에서 또 다른 조명들이 셋 넷 혹은 더 많은 목소리를 가지고 반주하듯 광채를 발하는 것이다.
# 줄지어 거니는 지등의 전개
살펴본 바와 같이 양정모의 작업은 원형과의 내적 관련성이나 기능적 유사성을 통해 공간을 질서 있게 거닐며 확장과 변형을 꾀하는데, 이러한 접근 방식은 유사성을 인식하는 ‘유추’에 얼마간 힘입은 바가 크다. 전시 명에 언급된 ‘타이폴로지 (typology)’의 개념이 이를 방증한다. 미술에서 주로 ‘유형’을 뜻하는 이 용어는 대상의 고정된 상태를 거부하고, 주제와 변주, 중첩과 병렬과 같은 유추적 형상화를 통해 그것의 변형 과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3) 유추는 과연 상상력을 가장 크게 동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손꼽히는데, 특히 미지의 것들을 조명하는 예술가들이 이 생각의 도구를 활용하여 대상을 전연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곤 한다. 기존의 지등으로부터 훌륭하게 계산된 확장과 변형을 시도한 양정모 작가 역시 이와 같은 통찰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음으로써 혁신의 열쇠를 얻었을 것이다.
한편 지등의 단계적인 발전과 변형을 이루어가는 더딘 전개에서 작가가 정진을 향한 의욕으로 스스로를 독려할 수 있었던 요인은 다름 아닌 조명의 가치에 있었다. 조명의 역할은 비단 주변 공간을 비추는 데에 머무르지 않는다. 어둠으로부터 형상의 내면을 환하게 솟게 하는 조명은 단연코 공간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궁극의 요소일 뿐만 아니라, 스러지는 빛으로 공간을 물들이는 예술품으로서 모든 감각을 열어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양정모는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갖는 조명의 예술성을 탐색하고, 특히 지등을 둘러싼 그의 예술적 이상에 형태를 부여하고자 매진하였다. 특히 그는 조명이 공간에 놓였을 때 형성되는 관조적인 분위기를 깊이 천착하고자 했다. 유행하는 조형 언어나 화려한 디자인은 좇지 않는다. 형태와 재료에 충실하면서도 시각적으로 아늑하고 온화한 자태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아름다움이란 얼마간 덧없음에서 발현되는 것임에도, 작가는 양식이자 공기처럼 오래도록 향유할 수 있는 작업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양정모 작가가 사용하는 한지는 그의 작업을 더욱 윤이 나게 갈고 닦는 매체이자, 작품 뒤의 정신을 감지할 수 있는 주요 요인이다. 2016년부터 한지로 지등을 제작해온 그는 빛을 더욱 고요하게 퍼뜨릴 수 있는 매체를 모색한 끝에 고유의 전통 종이에 주목하게 되었다. 지등에는 물론 최종 결과물에 가장 적합한 두께를 지닌 한지가 사용되는데, 작가는 패턴 인쇄에 적합한 종이보다도 더 얇은 평량의 한지를 이번 작업에 적용하였다. 이와 같이 얇지만 튼튼하고 통기성이 좋은 한지는 빛의 투과율을 높이는 동시에 습도를 조절하기도 용이하다. 또한 한지는 질긴 속성을 지닌 닥나무 껍질로 만들어진 덕분에 내구성과 보존성이 좋으며, 특유의 광택이 공예품에 멋을 더한다.4) 양정모의 작업이 담백하고 포근한 울림을 주면서도 권태스럽지 않은 정감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한지의 물성을 탐구한 결과이다.
# 미의식의 재건
하지만 양정모 작가는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이자 새로운 사고의 개척자로서, 작업의 의도를 한층 끌어올리는 표현 수단을 거듭 실험하고 있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는 좋은 예를 보여주듯) 한지를 매개로 아날로그적인 특성이 가미된 그의 조명은 지등의 제작 기술을 응용한 기법을 거쳐, 공간 내에서 조명이 형성할 수 있는 관계의 가능성을 꾸준히 제고하는 것이다. 예컨대 전통 지등은 철이나 놋쇠, 대나무 등을 뼈대로 삼고 표면에 종이를 발라 만드는데, 작가는 직접 제작한 틀에 대나무를 감아 골격을 만든 후, 간격을 각각 다르게 조정하여 풀칠하고 물을 뿌리는 등 응용을 반복한다. 때로는 철사를 넣음으로써 지지대 없이 형태가 유지되는 지등이 탄생하기도 한다. 한지나 전통 공예를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최근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며 증가하고 있지만, 이처럼 변모하는 지등을 통해 공간에 울림 혹은 적막마저 스미게 하는 양정모의 관계의 미학은 몇 안 되는 새삼스러운 경이로 다가온다.
요컨대 양정모의 작업은 조명을 들이기 위해 공간을 내어주는 개념이 아니다. 무한에서 풀려나 질서 있게 확장하는 지등이 공간과의 관계를 통해 도출하는 결과물이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예술적인 이상이다. 중력으로 인해 생성된 지등의 선형은 공간의 선이 지닌 아름다움을 더하고, 조명들이 아담한 빛줄기를 내려보낼 때 벽면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공간의 분위기와 온도를 고고하게 실어가는 것이 양정모의 작업세계가 추구하는 일면인 셈이다. 조명을 껐을 때 드러나는 지등의 질감도 마찬가지이다. 지등의 표면 위에 침잠해 있던 구김살은 정제되지 않은 특유의 질박한 운치로 전체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지 않은가. 양정모의 지등은 이렇듯 공간과 매 순간 상호작용하는 과정성과 고유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5) 본성으로부터 무엇으로든 확장되려는 이 창조적 본질은 그의 작업이 참다운 예술적인 범주로 도약하였음을 보여준다.
주지의 사실과 같이 오늘의 예술 분야는 새로운 기술과 재료를 실험하는 예술가가 등장하거나 심미적 기능을 지닌 오브제들이 대량 생산되는 등 유례없는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이전까지 디자인에 토대를 두었던 작가 양정모는 이러한 분기점에 위치한 공예가로서 기존과는 다른 시각을 이끌어야 했을 것이다.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작업 방식은 분명히 다르다. 예술가가 자신의 개성 있는 세계를 주관적인 방식에 따라 수작업으로 표현하는 반면, 디자이너는 설계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6) 그러한 점에서 양정모의 초기 작업은 기능에 따라 가치와 형태를 취하는 디자이너의 접근 방식을 보여주었으나, 이번 전시에서 그는 디자인 기법을 최소로 제한하며 예술가로서의 내면을 보다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지등의 여러 형태와 조화, 결과물의 상황에 관한 정신적인 이미지를 우선 추출하여 이를 현실로 구현한 것은 물론, 그의 예술성을 드러낼 수 있는 수공 (手工)을 고집했던 까닭이다. 다시 말해 작가는 원형이 되는 지등의 기능과 형태를 탐구하여 정신의 조형 세계를 마련하고, 푸가를 형상화하듯 공간에서 빛으로 하나의 유리망을 이룬 조명들을 통해 마침내 이것을 예술적인 창조로 시각화한 것이다.
양정모가 싹을 틔운 지등의 망은 그래서 공간과의 경계를 가르지 않고 하나되며, 광채가 윤무로 어우러져 어스름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말하자면 가변적인 공간을 가득 채운 빛이 어느새 스스로가 공간이 되어 관객을 온전히 휘감는 광경이다. 또한 담백한 생동감을 발하는 그의 조명은 공예 기술의 가치와 심미성은 물론, (과거 단순한 오락으로 경시되곤 했던) 감각적인 희열까지 감상자를 구석구석 관류하게 만든다. 이렇듯 기술과 미 (美), 기능과 즐거움에 관한 예술의 양면가치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양정모의 지등은 미의식을 재건할 수 있는 지평을 넘보며 무궁한 공간에 형체와 질서와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 각주
[1] 롤랑 마뉘엘, 『음악의 기쁨 1 - 음악의 요소들』, 이세진 역 (파주: 북노마드, 2014), 253-259.
[2] M. H. Abrams, The mirror and the lamp: romantic theory and the critical tradi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53), 94.
[3] 임석재, 『건축과 미술이 만나다 1945-2000』 (서울: 휴머니스트, 2008), 153-154.
[4] 이주은, 최영숙, 『한눈에 보는 한지』 (서울: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2013), 16-28, 35-38, 78.
[5] 최광진, 『기교 너머의 아름다움 : 미술로 보는 한국의 소박미』 (서울: 현암사, 2021), 24.
[6] 브루노 무나리, 『예술가와 디자이너』, 양영완 역 (서울: 디자인하우스, 2001), 38-41, 4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