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플

Shuffle

조현선 개인전

Hyun Sun Jo


2021 / 11 / 11 - 2022 / 1 / 8

나의 수(手)를 읽고, 나의 패(霸)를 두다

라흰갤러리 큐레이터 조은영





# 주체적 사유와 직관이 스며든 화폭


“추상은 난해하다.”


예술을 둘러싼 해박한 지식 여하를 막론하고, 추상 회화에는 번번이 ‘감상도, 해석도 까다롭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곤 한다. 과연 추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토록 많은 제약과 필요조건들이 따르는가? 그러나 겨울의 초입인 11월, 조현선 작가가 라흰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작업들을 보노라면, 추상이 정신성과 함축된 개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미증유의 새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감지하게 된다. 그는 2006년에 개최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꾸준히 추상의 조형 언어를 탐구해왔다. 그런데 작가는 이처럼 추상의 조류에 동참하면서도,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화면 내부의 일체가 스스로에게 소급되는, 일종의 ‘자기화된 기량’이 누적된 회화를 구축하고 있다. 이번 전시 《셔플 Shuffle》에서 조현선 작가가 출품한 작업들은 이와 같은 맥락에 방점을 찍는다.


사전적 의미에서 ‘셔플’은 특정 대상을 이쪽저쪽으로 바꾸는 것을 가리키며, 특히 카드놀이에서 이 용어는 주어진 카드를 잘 섞어 그 순서를 바꾸는 행위를 의미한다. 조현선 작가의 신작인 <반달색인_위장된 오렌지_초콜렛> (이하 <초콜렛>) 연작은 이와 같은 포커 (poker) 게임의 원리를 대입하여 보면 한층 순조롭게 접근할 수 있다.


통상 카드놀이에 임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요구된다. 먼저 자신에게 주어진 패를 고려하여 상대가 쥐게 될 패의 다양한 경우의 수들을 계산해야 한다. 또한 나와 상대의 내면 심리를 진실하게 파악하는 것이 승패의 관건이 되며, 무엇보다 패가 오고 가는 카드놀이에서는 선수들이 서로를 유심히 관찰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조현선 작가의 ‘셔플’에서 그와 패를 주고받는 대상은 누구인가? 나는 베일에 싸인 이 미지의 상대로부터 작가 자신의 그림자, 다시 말해 조현선의 자아를 본다. 


간단히 환언하자면 그는 그동안 쌓인 작업의 결과물들을 펼쳐놓고, 과거의 조현선과 그의 작품들을 카드놀이의 상대로 세운다. 그리고 작가는 그가 만들어냈던 패턴들을 숙지하며, 새로 펼쳐내야 할 다양한 상황을 정리한다. 말하자면 ‘나의 수를 내가 읽는’ 흥미진진한 과정인 것이다. 여기서 작가의 ‘수’는 회화의 원론과 전통에 대단히 충실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의 관심사는 가령 회화와 색과 제스처가 과연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의 화면 안에서 해답을 찾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화폭에 남겨진 본인의 발자취를 찾아 다시 새로운 길을 이어가는 것. 이는 조현선 작가의 굳은 신조이다. 특별히 이번 <초콜렛> 연작의 동기는 2019년에 제작한 <반달색인_위장된 오렌지> 작업으로 소급해 올라간다. 기존 작업의 짓눌리고 일그러진 부분과 틈새들, 무수한 선택지로 확장될 수 있는 색채와 조형 요소로부터 작가는 새 지점을 모색했다. 추상을 다루는 작가에게는 화폭 내의 모든 것이 기호에 따라 선택될 수 있는 여지를 지니므로, 작가는 다음 수를 읽는 과정에서 직관과 사유를 담금질하며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진실했으리라. 조현선 작가는 이처럼 본인의 기억과 감각의 상호작용을 화폭에 스며들게 하는 단계를 이른바 ‘색인 (index)’으로 정의한다. 

 

# 진실한 행보로부터 열리는 길


조현선 작가의 색인이 붙여진 첫 페이지는 2015년의 ‘위장된 오렌지 (Camouflaged Orange)’ 작업이 장식하고 있다. 조현선의 추상과 오렌지의 관계는 오렌지 색을 ‘춤추는 색채’라고 표현했던 릴케 (R. M. Rilke)의 시 <오렌지를 춤추어라 Dance the Orange>에 연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이 시에서 영감을 받았던 미국의 흑인 화가 휘트니 (Stanley Whitney)는 그의 회화가 지닌 추상성을 오렌지에 비유한 바 있는데, 이로부터 조현선 작가는 구상의 언어가 다소 가미되었던 그의 2015년 추상 작업을 ‘위장된’ 오렌지로 명명한 것이다. 


조현선의 작업 세계에서 이 오렌지는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었다. 2017년부터 그가 이어오고 있는 프로젝트 ‘반달색인’이 바로 여기에서 발아하였기 때문이다. 사전을 보면 특정 글자로 시작하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지점이 반달 모양으로 움푹 파여 있는데, 이것이 바로 반달색인이다. 따라서 조현선의 작업 전반을 하나의 사전으로 비유할 때, 작가는 그의 회화를 이루는 모든 형식과 조형 요소들은 항목별로 나누어 색인의 작업을 거치는 셈이다. 이윽고 그는 반달색인의 홈을 하나하나 펼쳐가며 요소들을 발췌하고 재구성하는 단계를 전개한다. 반달색인 프로젝트는 이러한 행보를 그리며 드로잉과 종이 작업, 페인팅의 영역으로 도약하였다.


이 과정은 마음이 이끄는대로 상상하면 현실이 된다거나, 시시각각 변하는 내면을 비춘다는 식의 불확실성과는 거리가 멀다. 조현선 작가는 진실한 의도와 소신을 가지고 창작의 문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그의 지난 작업들은 폭발적인 영감의 소용돌이를 거쳐 여과되며,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색과 형태들은 대개의 경우 종이 작업으로 구현되는 단계에 그친다. 하지만 반달색인의 페이지들을 넘기면서, 작가는 용의주도한 선택지들의 집합만을 캔버스로 옮겨 낸다.


그런데 이처럼 스스로의 역사를 반추하는 여정에서, 조현선 작가는 《셔플》 展을 앞두고 다시 종이 작업으로의 문을 두드렸다. 작가의 표현을 옮기자면, 작업을 둘러싼 의구심을 품을 때에 그는 매체의 변화를 탐색한다. 예컨대 그는 판화와 실크 스크린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마치 실크 스크린의 과정을 연상케 하는 레이어를 초기 회화에 반영한 바 있다. 그러나 우발적인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고 통제와 제어의 원리로 진행하는 이 반달색인 작업에서, 화면의 본바탕에 집중하여 수정을 가하는 것은 좁은 길을 통과하는 연속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반달색인 작업의 물줄기들이 하나의 원류로부터 파생된 동일 선상에 있음에도, 조현선 작가가 노동집약적인 수정을 거듭하며 이번 전시에서 전연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 선택을 즐기는 경지


다소 거창한 화두일 수 있겠으나,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힘이 미칠 수 있거나 스스로가 이룰 수 있는 것에 관해 심사숙고한다. 이는 주변에서 늘 이루어지고 있지만 같은 방식으로는 진행되지 않고, 비결정적인 요인을 내포하고 있는 대상들이다. 심사숙고하는 사람은 이처럼 목적을 달성할 방법을 탐구하며 최초의 원인을 발견하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때 심사숙고의 궁극적인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선택이다. 요컨대 조현선 작가는 작업의 목적과 방향성을 모색했던 길의 끝에서,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욕구를 발견했을 터이다. 여기서 조현선의 ‘숙고된 욕구’란 작업을 위해 놓인 수많은 경우의 수, 즉 주어진 패들을 나열하면서 그의 진실한 관심사가 무엇인지, 옥석을 고르듯 분별하는 것이라 하겠다.


달리 말해서 조현선 작가의 역할은 화면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에 한정될 뿐이다. 작가에 의하면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임은 그가 맡은 바가 아니며, 감상은 관객의 몫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지들을 통해 연상되는 대상을 매 작업마다 암시함으로써, 보는 이에게는 감상의 실마리와 감흥을, 작가 스스로에게는 일종의 숨통을 틔우고 있다. 예컨대 《셔플》에서 선보이는 신작 시리즈의 이름은 ‘초콜렛’으로, 이는 과거에 작가가 종종 맛보았던 사다하루 아오키 (Sadaharu AOKI) 초콜렛에서 영감을 얻은 제목이다. 파스텔 모양을 닮은 것으로 유명한 이 브랜드의 초콜렛은 단일 구조적인 화면 내에서 간결하게 환원된 <초콜렛> 시리즈의 형태와 유사하다. 


하지만 <초콜렛> 연작의 조형 표현이 이처럼 시각적으로 빠르게 전달되고 있는 이면에는, 색채와 형태를 치밀하게 조합하고 편집해 나가는 고된 행위가 자리하고 있다. 상기한 바와 같이 이 작품들은 기존의 <위장된 오렌지> 작업의 일부를 종이에 발췌한 것으로, 색 번짐의 효과가 없는, 기하학적이고 명료한 윤곽의 하드엣지 기법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자세히 관찰해보면 바탕이 되는 종이가 다소 색다르다. 드로잉 종이가 아니라 로자스피나 재질의 무른 종이이기 때문이다. 이 무른 종이는 사실 그리는 것은 물론, 표면을 단단하게 마무리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작가는 포근한 느낌을 주는 무르고 질감 좋은 종이를 선택하여, 독특한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특유의 흡수력으로 인해 응축된 안료가 더욱 강하게 밀착됨으로써, 멀리서 보면 판화나 아크릴과 유사하지만 가까이 관찰할수록 손의 느낌이 명확한 마띠에르와 일그러지는 효과가 돋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조현선 작가는 이처럼 겉면이 고르지 않고 불거진 부분들을 상쇄하고자 무진한 노력을 가했다. 이를테면 그는 먼지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은 공간에서 종이 작업의 결점들을 찾아내는데, 마스킹 테이프를 이용해 수정할 부분을 하나씩 떼어내다 보면 종종 섬유가 함께 탈착되기도 한다. 그러나 <초콜렛> 연작들은 작은 크기로 인해, 작가가 통제하기 쉬운 범위 내에서 조형 요소들이 계획적으로 정의된다. 색채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망막을 통해 명확하게 지각할 수 있는 색채는 조현선 작가에게 대단히 순수한 표현 수단이다. 조현선의 색채는 관념과 정서 등의 외적인 동기가 아니라, 색상환의 체계적인 시스템에 따라 도입된다. 보색과 인접 보색을 탐색하며, 색이 자체의 무구한 성격을 가지고 화면에 빛의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이다. 

 

작가가 파스텔을 종이에 얹어내는 방식 또한 최소화된 몸의 움직임을 통해 배치되는데, 작가가 좁은 길의 단락에서 선택한 요소들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사유할 수 있는 짜임새가 다채롭다. 예를 들어 어떤 것은 터치가 물방울처럼 작고 동글동글한 반면, 또 다른 부분은 거칠고 견고하다. 사선으로 무심하게 올려진 자국이 있는가 하면, 화면에 표현된 면들이 높낮이의 차를 다양하게 변주하기도 한다. 이처럼 조현선 작가가 주어진 패를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자면, 그는 자기 안에 존재하는 해답에 따라 조형 언어를 선택하고 채워가는 이 과정을 즐기듯 밟아 가는 듯하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상대로 주관의 힘을 발휘하며, 순간순간 궤적을 그려나가는 모습은 이를 지켜보는 감상자의 눈앞에서 또한 얼마나 흡입력 있게 펼쳐지는가. 조현선의 말마따나, 작가가 뒤섞고 있는 《셔플》의 패는 관객에게 그 묘수가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작품명 <반달색인_위장된 오렌지_초콜렛>에 내포된 반달색인 작업의 위와 같은 전개 양상을 염두에 둔다면, 관객 또한 이해와 상상에서 발로하는 자기만의 감흥을 조현선의 화면에서 충분히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